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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by 펄서까투리 2023. 11. 4.

# 세줄 요약 #

  1. 인류를 '우리 인간'으로 지칭하지 않고,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으로 객관화하여 표현함으로서, 인류의 역사, 문화, 특징을 매우 공정(?)(혹은 시니컬하게)하게 차분히 설명한 책이었다.
  2. 크게는 사피엔스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3가진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인류를 예찬하는 책이 아니기에 3가지 혁명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결과 사피엔스와 지구 혹은 주변 다른 동식물 종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선악의 관점이 아닌 단순 사실 중심으로 설명한다.
  3. 사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룬 책이고, 개인적으로 너무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3줄 요약으로 적기도 부족할 만큼 사피엔스에 대해(그리고 사피엔스 종에 속한 나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책이다.

 

# 상세 리뷰 #

  • 책 제목: 사피엔스
  • 저자: 유발 하라리
  • 역자: 조현욱(번역), 이태수(감수)
  • 출판사: 김영사
  • 출판일: 1쇄 2015년 11월 24일

 

1. 인류가 아닌, 사피엔스에 대하여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괜히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있겠는가... 따라서 모든 인류의 역사에 대해 마치 숭고한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혹은 어쨋건 인류는 점점 발전하고 개개인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걸 철저하게 깨주는 책이어서 좋았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첫장에서 우리 인류는 사람 속에 속한 여러 종들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종, '호모 사피엔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첫장부터 우리만 남고, 다른 사람속의 종들은 멸종한 이유가 사실 우리가 그 형제자매를 대량학살하고 멸종시켰을 가능성이 컸음을 시사한다(그것이 꼭 직접적인 대량 인종 청소까진 아니어도 서식지 다툼에서 자연적으로 멸종시켰을 가능성을 의미). 따라서 첫장에서부터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우리를 사피엔스라고 명명하고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피엔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지만, 앞부분은 진화론을 기반하여 많은 사피엔스가 다른 호모 속의 형제들이 멸종하는 동안 생존하여 지구의 지배 종이된 이유를 설명한다. 나의 경우에는 진화론을 믿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이 많이 공감하며 읽었지만, 창조론을 믿거나 인류에 대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조금 거북할 수도 있다.

 일단 첫시작부터 사피엔스의 원죄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가 요즘 환경과 지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며 욕심없이 지구와 공존하던 존재였는데, 현대 사회의 기술 발전과 문명의 이기에 빠져 지구를 망치고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미 사피엔스는 탄생하면서부터 우리의 형제자매(대표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그리고 빙하기에 수많은 대형 포유류(매머드, 스밀로돈, 호주의 거대 캥거루 등등)을 멸종시켜온 증거를 제시한다. 즉 사피엔스는 날때부터 숭고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형제 자매를 멸종시키고, 대형 포유류들을 무분별하게 사냥하며 멸종시키고, 불을 배우고 나서는 가장 손쉬운 사냥을 위해 수시로 숲에 불을 질러왔던 존재였다. 

 

2. 3가지 혁명: 인지, 농업, 과학혁명

2.1. 인지혁명: 유인원이 진화하여 사람속이 되면서, 도구와 불을 사용하면서 원래 유인원까지는 생태학적 위치가 중간(고양이과 맹수한테는 사냥당하고, 작은동물과 식물은 먹었던)이었던 사람속이 지구를 지배하가기 시작했다. 단 여기서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수백년만년 전부터 생태학적 위치가 높았던 이른바 고양이과 대형포유류(호랑이, 사자, 표범 등등)는 원래부터 왕이었기에 그 위엄을 유지하고 필요 이상으로 사냥을 하진 않았는데, 사람속은 갑자기 불과 도구의 힘으로 단 몇 만년만에 생태계에서 왕좌에 오르자, 마치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처럼 필요이상으로 잔인하게 주변 동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속들과 달랐던 큰 특징은 '상상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유인원들도 가족과 혈족에 기반하여 50~200명까지 규모는 유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조직을 만들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집성촌을 만들고 8촌까지는 함께 모여살았다고 하지만 씨족 중심 사회가 마을을 넘길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사피엔스만이 수백명을 넘어 수천, 수십만을 넘어 이제는 억단위의 조직을 형성 가능했는데, 그 핵심은 상상의 허구를 만들고 모두가 공유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모두가 공유하는 허구의 첫번째가 바로 종교이다. 현대의 대표적 종교인 기독교의 경우, 하나님을 믿기에 말이 안통해도 한국의 기독교인과 미국의 기독교인이 함께 교회에서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국가, 기업 모두 상상의 허구이다. 단 모두가 공유하고 모두가 믿기에 '실존하는 허구'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유신론, 무신론을 따지는 건 아니다. 다만 종교이든, 국가체계이든, 기업이든 이러한 물질 세계에 존재하진 않지만 관념적인 허구가 사피엔스가 문명을 이룬 핵심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진화론과 과학을 기반하여 인문학적으로도 매우 시니컬하게 사피엔스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종교를 신실하게 믿는 분이나 인류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생각했던 분들은 조금 거북할 수도 있다. 작가도 지속적으로 우리 인류가 공유하는 종교나 이념(인권, 평등, 민주주의, 페미니즘 등등)을 무시하는건 아니라고 했지만... 어쨋건 이런 것들 모두는 사실은 실체가 없는 사피에선스들이 집단 상상하기에 가능한 '실존적 허구'라는 것이다. 

 국내의 대기업 삼성으로 이러한 '실존적 허구'의 개념을 설명하면, 삼성 또한 마찬가지로 실체는 없다. 이재용 회장이 없어도 삼성은 새로운 회장을 선출할 것이고, 삼성이 가진 공장이나 건물 또한 그것이 실체라기엔 필요에 따라서 삼성은 중국에도, 베트남에도, 미국에도 공장을 짓거나 혹은 없앨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삼성에 다니는 직원은 새로 뽑히고 또 누군가는 은퇴하겠지만 삼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삼성이란 브랜드를 믿는 이상, 삼성은 그 실체는 없지만 전세계 모든 인류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속의 형제들을 몰아내고, 지구 역사상 다른 종들은 하지못한 유례없는 통합을 이루어낸 최고의 능력이자 혁명이다. 이러한 사피엔스가 만든 '실존적 허구'는 역사를 따라 달라졌다. 종교는 여전히 사피엔스가 만든 가장 강력한 허구이지만 점점 그 능력이 약해져, 중세, 근대로 오면서는 '국가'라는 허구, 그리고 현대 사회로 오니 이제는 국가의 개념보다고 여러 사상 '자본주의, 소비주의, 페미니즘' 등등이 강해지고 있다(아직은 국가가 가장 강하지 않냐고? 소비주의가 국가보다 강력해진 증거는 이미 우리가 겪고있다. 아마 우리나라의 롤드컵을 좋아하는 10대 학생은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보다, 같이 롤드컵을 즐기는 미국의 10대 소년과 더 내적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2.2. 농업혁명: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고의 사기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보통 우리가 그동안 역사책에서 농업혁명이야 말로 인류가 발전하고 식량위기에서 처음 벗어난 위대한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사실 농업시대 이전 수렵채집인이 더 행복하고 영양적으로도 우수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수렵채집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아마 일과 중 근로시간은 사냥이나, 과일 채집 등 합쳐도 하루 3~4시간이 안 넘었을 것이다. 그 외의 시간은 지금 현대인으로 치면 여가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농민들은 지금처럼 휴일의 개념도 없고, 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논과 밭으로 나가, 불편하게 허리를 굽히고 하루종일 농사를 짓다가 밤이 되어서야 골아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영양학적으로도 오직 쌀이나 밀 밖에 못 먹었던 농민(귀족이나 왕족은 제외) 대다수에 비하여 수렵 채집인들은 가끔 굶었을 지언정, 고기, 물고기, 과일, 견과류 등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며 영양적으로는 훨씬 풍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한곳에 정착해서 사니 안전했을 거라고? 물론 그랬을수도 있지만, 농민들이 식량을 모으면서 곧 창고는 가장 중요한 건물이 되었고, 이것이 바로 인류사의 모든 비극인 전쟁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은 각자의 영역이 있고 유랑생활을 했으니 부족간의 국지전은 있었어도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멸족시키는 처절한 전쟁은 없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되며 상대방의 식량을 뺏기 위한 약탈 전쟁이 시작되었고, 약탈을 하면 어차피 전쟁에서 패한 적국 국민들은 굶어 죽을수 밖에 없으므로 이들이 이판사판으로 덤비기 전에 미리 다 죽여버리는 대규모 학살(즉 전쟁범죄)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을게 없는 농업을 그럼 왜 시작한 걸까? 이유는 하나다 수렵채집인 시절의 조상들이 앞서이야기했듯이 무분별한 사냥과 채집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을 생산하지 않으면 모두가 굶어죽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류는 굶주림을 극복했으니 진보라고 하기에는 식량 증가보다 인구증가가 더 가팔라서 결과적으로 농업혁명은 근대 이전까지는 소수 왕족과 귀족, 즉 엘리트 층만 행복하고 대다수인 농민들은 하루종일 농사만 짓다가 필요하면 전쟁에 끌려가서 죽는 불행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가 정착하고 행복해졌다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 층만을 위해 나머지 인류가 모두 희생해야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인 것이다.

 

2.3. 과학혁명: 나는 실제로 왜 과학혁명이 서구권에서만 나타나고, 한때 인류의 부를 모두 소유했던 동양의 제국들은 몰락하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또한 서구에서만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없었는지도 궁금했다. 뭐 이것을 밀농사와 쌀농사의 차이로 설명하는 것도 듣긴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재미있게도 지도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원래 동양이고 서양이고 항상 지도는 어느 세계권이나 완성되어 그려져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인류가 우주 밖으로 나가 지구의 전체 모습을 알기 전부터, 동양이고 서양이고 모든 문화권에서 현재 당시 문명이 알고 있던 영역 너머는 모르더라도 비워두지 않고, 바다의 낭떠러지, 별들의 세상 혹은 괴물들의 지옥 등등 환상의 세계로라도 모두 채워넣고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전에 없던 신대륙이 발견되자, 처음으로 유럽에서는 우리가 탐험하지 않은 지역은 공백으로 그린 '비어있는 지도'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가져온 발상의 전환은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이다. 사실 인류는 이런 생각을 한지 얼마되지 않는다. 모든 문화권에서 세상의 진리는 불변하고, 항상 고대의 조상들이 이미 모든 지혜를 알고 책으로 남겨놓았고 우리는 그저 그대로만 살면 된다고 믿었다. 사실 이게 종교이다. 이미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마호메트께서 모든 세상의 진리는 알고 계시니 우리는 그저 성경, 불경, 사서삼경, 코란만 읽고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1000년 전에도 1000년 후에도 인류는 그렇게 선지자들의 지혜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바꿀 필요도 굳이 진보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가 모든 것을 바꾼 것이다. 즉 우리는 모르는게 더 많기에 자연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함으로서 우리는 더 발전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기에 나는 언젠가 죽더라도 내가 알게된 것을 정리하고 후세에 남기면 내 후배들이 곧 더 많은 것을 알아내 그것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지금의 나보다 내 후손들은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이것이 곧 연구 -> 기술개발 -> 산업으로 이어지는 핵심인 것이다. 그렇게 과학은 한명의 선지자가 정하신 진리가 아니라, 선배들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어깨 위에서서 새로운 진리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즉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가 아닌 미래에 가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에 발전까지 불러왔다. 과학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즉 미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미래는 언제나 과거보다 부유할 것이다. 

 즉 중세에는 시장이 커질 것이라 생각은 안했을 것이에 투자라는 개념은 없었다. 물론 그때도 돈을 빌려누는 고리대금은 존재하였지만 이것은 투자라는 개념보다는 흉년이 들었을때 국왕이 자신의 일꾼인 농민들이 모두 굶어주는 것을 막는 것이지, 농사기술을 발전시켜 더 많은 세금을 걷기위해 농업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과학혁명으로 인류는 미래의 시장은 지금보다 커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은행을 만들고 사업가가 말하는 미래의 가치(즉 신용)를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사업가는 기술을 발전시켜 생산량을 더 늘린 후에 돈을 갚고 부자가 되었고, 그동안 은행은 빌려준 돈의 이자를 받아 마찬가지로 부자가 되어 또 다른 사업가한테 빌려주는 것이다. (이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참 재밌었는데... 한 마을의 부자가 은행에 100골드를 예금한다. 마을에 이사온 제빵사가 은행으로부터 제빵소를 지어 미래에는 많은 수익을 낼거라고 설득하여 100골드를 대출받는다. 제빵사는 부자의 건물에 가게 임대료로 100골드를 지불한다. 부자는 이 100골드를 다시 은행에 예금한다. 결국 은행에는 200골드의 예치금이 생겼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신용을 기반한 자본주의 위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알아가야 하고, 새롭게 알게된 지식과 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한다' 이 생각의 발상이 신대륙 발견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게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의 제국들은 '우리는 이미 대제국이고 더 발전할 필요가 없기에' 정체되었고, 끝내 한줌도 안되는 유럽의 군대에게 엄청난 기술력 차이에 밀려 몰락한 것이다.

 

3. 정말 더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원래 그냥 역사를 좋아해서, 또 유명해서 읽어봤는데 정말 여러모로 인류, 아니 사피엔스에 대해 나의 시야를 많이 넓혀준 책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마지막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어릴 적에는 믿었는데 지금은 딱히 안 믿는 불교의 진리를 이 책에서 깨달은 것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인류 개개인의 행복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사피엔스의 역사는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발전한 것으로 착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농업혁명은 사피엔스 대부분을 불행한 농민들로 만들었고, 현대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편하기 위해 핸드폰을 만들었지만, 그덕에 우리는 퇴근해서도 직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유튜브가 생겨서 언제 어디서든 재미있는 영상을 보게되었지만, (나도 매우 심각한데) 쇼츠에 중독되어 집중력이 현재하게 떨어졌다. 즉 위의 3가지 혁명 모두 우리 개개인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인지 마지막에 설명하는데, 일단 생물학적으로는 별거없다 그냥 호르몬의 작용이다. 이른바 요즘 유명해진 도파민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파민은 향상성이 있어서 수치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즉 우리는 어떤 새로운 성과를 이루거나 재미있는 취미를 찾으면 처음에는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서 매우 짜릿하고 기쁘지만, 우리의 뇌는 도파민 수치를 항상 일정한 수치로 유지하려고 하기에, 성과를 이루고 며칠이 지나면 평범해지고, 재미있던 취미도 자꾸 하다보면 도파민이 더이상 반응하지 않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월스트리트의 금융권 트레이더가 중세의 마부보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월스트리트 금융권 트레이더가 수백억 수익을 내건, 중세의 마부가 허름한 마굿간을 새로 짓 건 둘의 도파민 수치는 똑같이 올라가고, 언젠가 둘다 똑같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 행복해지려면 방법은 이 수치를 항상 의도적으로 낮춘 채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흔히 말하는 작은 일에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했던 소확행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한 철학이 불교라고 한다. '집착이 번뇌를 만들고, 번뇌에 쌓이면 불행해지니, 집착을 내려놓으면 부처가 되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평온한 상태가 되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가 불교의 핵심 교리이다. 이를 요즘 생물학이 알아낸 사실에 접목하면, 도파민을 올리는 일에만 중독되면, 도파민 수치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 자꾸 자극적인 것만 찾고 불행해지니, 애초에 도파민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항상 내려놓으면, 작은 일에도 도파민이 상승하여 행복을 느끼면서도 과하지 않아 수치가 금방 내려가니, 항상 적정 수치를 유지하므로 평온을 찾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불교하면 '마음을 비워라'가 인간으로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살라는 것으로 해석해서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물학에서 호르몬 수치 향상성과 결합하여 설명되니 일리가 있다고 느껴 요즘은 나도 집착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해서 살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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